김대건 신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며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다. 성인 이전 단계이지만 교황청에서는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며 축하하였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주례하신 광화문 시복미사 때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모든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을까? 바로 일제강점기 당시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켰으며 고국 땅을 밟지도 못한 채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1821년 충남 당진 솔뫼마을에서 태어난 김대건 신부님은 마카오 신학교 유학 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선교활동을 펼치던 중 체포되어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하셨다.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내 성당 옆 잔디밭 광장에 김대건 신부님 동상이 세워졌다.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
1846년 9월 16일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 근처 한 야산에서 스물다섯 살 청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였다. 당시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은 깊은 산골짜기나 섬마을 같은 외딴곳에 숨어 지내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는 다른 사람들처럼 숨어서만 살지 않았다.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여 프랑스어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또한 신학공부도 열심히 하여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하여 선교활동을 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5세 때 아버지 김제준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들 김진후 비오가 열병으로 사망하자 큰 슬픔에 빠졌다. 또 이듬해 작은형마저 병사하자 동생 택현 안드레아와 자신 그리고 여동생 미리내 마리아 세 남매만이 남게 되었다. 어린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의지할 곳 없이 남겨진 삼남매는 삼촌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척 어른으로부터 천주실의라는 중국책을 선물 받게 되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종교사상에 눈뜨게 되었다. 이후 교리서 연구 모임 ‘명도회’ 회원이었던 홍봉주의 영향으로 입교하였고 세례명이 토마스였던 최양업 부제와의 만남을 계기로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유학생이며 한국 성직자 양성을 위한 최초의 신학교 설립자인 김대건의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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